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처녀지 개간 운동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[youtube(FIMo6Ej5ggs)] '''"우린 미국을 소비에트적 속도로 따라잡을 것이다!"(Мы Америку догоним на советской скорости!, 1988)'''는 음악 프로젝트 [[예고르 레토프|코무니즘(Коммунизм)]]의 1988년 곡으로 처녀지 개간 운동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. 가사는 개간 운동 당시 유포된 수많은 어용 작품 중 하나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왔고 멜로디는 미국의 경음악인 [[https://youtu.be/kRAfUZDpGSk|"팝콘"(Popcorn, Gershon Kingsley, 1969)]]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.[* 이 곡은 1975년 소련의 국영 음반사이자 유일한 "공식" 음반사였던 멜로디야에서 낸 컴필레이션 앨범 "Парад оркестров"에 수록된 기록이 있다.] 이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 [[처녀지개간메달]]이다. 이를 계기로 다수의 [[러시아인]]들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에서는 한동안 러시아인이 [[카자흐인]]을 제치고 제1의 민족집단을 구성하기도 했으며 [[우랄]]과 [[시베리아]] 등지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기도 하였다. 물론 이때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[[1990년대]]에 [[카자흐스탄]]을 떠나기는 했다. 이때는 [[러시아]]나 카자흐스탄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은 똑같았던 데다 카자흐스탄에서 [[카자흐어]] 진흥 정책과 [[러시아어]] 배제 정책을 펴자 평소에 카자흐어를 잘 안 쓰는 상당수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보다 러시아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러시아로 귀환해서 한동안 카자흐스탄의 인구가 감소되기까지 했다. 물론 러시아로 돌아간다고 해도 러시아도 사정이 그리 녹록치 않아서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온 사람도 있다. 카자흐스탄에선 러시아어가 [[공용어]]급의 위치에 있다는 것도 한 몫하고 그래도 [[중앙아시아]]에서는 살만한 나라인 점도 있기 때문에... 그 외에도 국제적으로 영향이 있었다. [[모스크바]]를 방문했던 [[마오쩌둥]]이 흐루쇼프가 [[미국]]을 따라잡겠다고 떠드는 것을 보고 경쟁심을 느껴서 [[중국]]도 [[영국]]을 따라잡겠다고 외치는데 그 결과가 바로 '''[[대약진 운동]]'''이다. 흐루쇼프는 제때 곡물 수입을 해서 기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마오쩌둥은 자기 자존심 때문에 똥배짱으로 나가느라 처녀지 개간 운동과는 [[제사해 운동|비교도 할 수 없는 참혹한 결과]]를 초래했다. 결국 수십 년이 흘러 [[소련 붕괴]] 후에야 [[러시아]]의 농업은 정상화될 수 있었다. 러시아는 2020년대 기준 세계에서 가장 곡물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.[* [[2022년 식량·에너지 위기]]도 러시아가 수출하던 곡물이 끊긴 것과 연관이 크다.] 바꿔 말하면 소련 시대에는 그만큼 포텐셜이 있는 국토를 가지고도 정책 결정의 실책 때문에 제대로 못 써먹었던 셈이다.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title=처녀지개간메달,version=36)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